여름이 시작되면, 단순히 뜨거운 날씨만 생각나지만, 사실 입하부터 대서까지의 여름 절기는 농경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 선조들의 삶 속에서 중요한 지침이었어요. 특히, 이 절기들에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도 많이 얽혀 있어요. 어떤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요? 입하와 망종, 대서 등 절기와 관련 있는 속담과 이야기를 살펴보면, 그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던 사람들의 지혜와 웃음을 엿볼 수 있을 겁니다. 이제 여름 절기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를 풀어볼까요?
입하(立夏) – 여름의 시작 (양력 5월 6일경)
한자 풀이 : '입(立)'은 '서다'를 의미하고, '하(夏)'는 '여름'을 뜻합니다. 즉, 여름이 서서히 시작된다는 의미로 입하는 여름이 본격적으로 다가왔음을 알리는 절기입니다.
입하는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를 알리는 절기로, 이 시기에는 농사와 관련된 속담들이 많이 전해집니다. 예를 들어, “입하 바람에 씨나락 몰린다”는 말은 못자리에서 바람이 불면 볍씨가 한쪽으로 몰려 농사에 어려움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때는 바람 피해를 막기 위해 못자리의 물을 빼주어야 한다고 하죠. 또한, “입하 일진이 털 있는 짐승날이면 목화가 풍년 든다”는 속담도 있는데, 이것은 눈이 많이 온 해에는 목화 농사가 잘 된다는 믿음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모내기를 준비하는 시기라 “입하물에 써레 싣고 나온다”는 말도 있었어요. 농부들이 들로 나와 본격적으로 농사 준비를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입하에 물을 가두면 비료 손실이 많아 농사가 잘되지 않는다는 뜻의 “입하에 물 잡으면 보습(소에 끌리어 논밭을 가는 쟁기의 일부로서 나무쟁기의 술바닥과 땅을 직접 가는 부분에 붙인 날)에 개똥 발라 갈아도 안 된다”는 속담도 있죠. 이러한 속담들은 입하 무렵 농사에서의 어려움과 지혜를 재미있게 표현한 것들입니다.
소만(小滿) –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다 (양력 5월 21일경)
한자 풀이 : '소(小)'는 '작다', '만(滿)'은 '가득 차다'를 의미합니다. 소만은 작은 차오름을 뜻하며, 만물이 본격적으로 자라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소만은 여름이 시작되는 초입으로, 씀바귀 잎을 따서 나물로 해 먹는 시기입니다. 이때부터 냉이나물이 사라지고, 보리 이삭은 누렇게 익어가며 본격적으로 여름 기운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농가월령가에도 "4월은 맹하라, 입하와 소만이 절기에 속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듯, 초여름의 기운이 서서히 느껴지는 계절이죠. 이 시기부터는 모내기를 준비하느라 농사일이 매우 바빠집니다. 보리 수확과 밭작물의 김매기, 모판 관리 등으로 일손이 부족할 정도입니다.
소만에 접어들면 산과 들은 신록으로 가득 차고, 대나무는 누렇게 변합니다. 이유는 새롭게 자라는 죽순에 영양을 공급하기 때문인데, 마치 어미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자식을 돌보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이때의 대나무를 가리켜 '죽추(竹秋)'라 부르죠.
또한, 소만 무렵 부는 바람이 예상보다 차가운 경우가 많아 "소만 바람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도 전해집니다. 이처럼 소만은 자연의 생명력이 넘치는 시기이지만, 예기치 않은 기후 변화도 함께하는 때입니다.
망종(芒種) – 곡식을 심기 좋은 시기 (양력 6월 6일경)
한자 풀이 : '망(芒)'은 곡식의 까끄라기를, '종(種)'은 씨앗을 의미합니다. 망종은 씨앗을 심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라는 뜻입니다.
망종은 본격적인 모내기와 보리베기가 시작되는 절기로, 농사일이 매우 바쁜 시기입니다. 그래서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이 생겼습니다. 망종 전에 보리를 베지 않으면 바람에 쓰러질 위험이 있어, 서둘러 수확해야 한다는 의미죠. 또한, “보리는 익어 먹고, 볏모는 자라 심는다”는 말도 있으며, 이 시기에는 사마귀와 반딧불이도 나타나고, 매화가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망종은 남쪽 지역에서 특히 바쁜 시기여서 “발등에 오줌 싼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농사 준비에 정신이 없습니다.
망종에는 그해 농사의 운을 점치는 풍습도 있습니다. 이것은 망종보기라 하여, 망종이 음력 4월에 들면 보리농사가 잘 되어 빠르게 수확할 수 있지만, 5월에 들면 수확이 늦어져 농사에 지장이 생긴다고 합니다. 제주도에서는 망종날 풋보리를 따서 죽을 끓여 먹으면 여름철에 배탈이 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으며, 전남 지역에서는 풋보리를 베어 그을음을 하여 먹으면 보리농사가 풍년이 든다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또한, 망종날 천둥이 치면 그해 농사는 불길하다고 여겼으나, 우박이 내리면 오히려 풍년이 든다고 믿었습니다. 지역마다 망종을 맞이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농사에 있어 중요한 절기임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하지(夏至) – 낮이 가장 긴 시기 (양력 6월 21일경)
한자 풀이 : '하(夏)'는 '여름', '지(至)'는 '이르다'를 뜻하며, 하지는 여름의 절정,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은 시기입니다.
하지는 한 해 중 낮이 가장 긴 시기로, 고려시대 기록에 따르면 5일씩 끊어 3 후(候)로 나눕니다. 초 후에는 사슴이 뿔을 갈고, 차후에는 매미가 울기 시작하며, 말 후에는 한약재로 쓰이는 반하의 알이 생긴다고 전해집니다. 하지 무렵에는 장마와 가뭄에 대비해야 했으며, 농사일이 매우 바쁜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메밀 파종, 누에치기, 감자 수확, 보리 수확과 타작, 모내기 등 다양한 농사일이 진행됩니다. 남부지방에서는 단오 무렵 시작된 모내기가 하지쯤에 마무리되며, “하지가 지나면 구름만 봐도 비가 온다”는 속담처럼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됩니다.
예전에는 보온용 비닐이 없었기 때문에 모내기의 적기를 ‘하지 전삼일, 후삼일’로 정해 서둘러 모를 심었습니다. 하지가 지나면 모내기가 늦어져, “하지가 지나면 오전에 심은 모와 오후에 심은 모가 다르다”는 말도 생겼습니다. 하지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여겨졌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내 비를 기원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우제가 오랜 전통이었으며, 단군 신화에도 비의 신인 우사(雨師)가 등장할 정도로 비는 농사에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수리시설이 부족한 시절에는 하지 무렵의 가뭄이 흔해 기우제가 성행했죠. 민간에서는 산이나 냇가에 제단을 세우고 마을 전체가 참여하는 기우제를 열어 돼지, 닭, 술, 떡 등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때로는 신성한 장소에 동물의 피를 뿌려 더럽힌 뒤, 비가 와서 씻어가기를 바라는 의식도 행해졌습니다.
또한, 강원도 평창군 일대에서는 하지 때 감자를 캐어 밥에 넣어 먹으면 감자가 잘 자란다고 믿었고, 이것을 ‘감자천신’이라 불렀습니다. “하짓날은 감자 캐먹는 날이고 보리 환갑이다”라는 말도 전해지는데, 하지가 지나면 보리가 마르기 시작하고 감자 싹도 시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소서(小暑) – 더위가 시작되는 시기 (양력 7월 7일경)
한자 풀이 : '소(小)'는 '작다', '서(暑)'는 '더위'를 의미합니다. 소서는 작은 더위, 즉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소서는 여름철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로, 중국에서는 소서를 15일씩 3 후(三侯)로 나누어 초 후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차후에는 귀뚜라미가 벽에서 살기 시작하며, 말 후에는 매가 새를 사냥한다고 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장마전선이 한반도 중부 지방에 머물며 비가 많이 내리고 습도가 높아집니다.
소서 무렵은 하지에 끝낸 모내기 이후 모들이 뿌리를 내리는 시기이기도 해서, 농부들은 논매기를 시작하고, 논둑과 밭두렁의 풀을 베어 퇴비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가을보리를 수확하고, 그 자리에 콩이나 팥을 심어 이모작을 하기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하지 무렵부터 모를 심었으며, 충남 공주시 반포면 등에서는 대체로 소서 무렵까지 모내기를 마쳤습니다. 김매기는 모를 심은 후 보름에서 한 달 정도 지나 시작되며, 주로 소서에 이뤄졌습니다.
이때는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과일과 채소가 풍성하게 나기 시작합니다. 또한, 밀과 보리가 수확되어, 농가에서는 밀가루 음식을 많이 해 먹으며 한가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소서는 여름이 한창 진행 중임을 알리는 절기로, 대서와 함께 계하(季夏), 즉 여름의 마지막 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절기라고 했습니다. 하지(夏至) 이후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때문에, 이 무더운 시기가 오기 전에 모내기를 끝내는 것이 벼의 건강한 성장에 필수적이겠죠. 그래서 소서 전까지는 모내기를 마쳐야 한다고 강조하는 거죠. 하지만 농가의 사정으로 모내기가 늦어질 경우, 모든 일손을 총동원해 늦기 전에 끝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속담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소서 모는 지나가는 행인도 달려든다"라는 속담은 소서가 지나기 전에 모를 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또 "7월 늦모는 원님도 말에서 내려 심어 준다"는 말도, 농사의 적기를 맞추기 위해서는 누구든 나서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죠.
대서(大暑) – 가장 더운 시기 (양력 7월 23일경)
한자 풀이 : '대(大)'는 '크다', '서(暑)'는 '더위'를 의미합니다. 대서는 여름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시기를 의미합니다.
대서는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흔히 중복과 겹쳐 여름의 최고조에 달하는 더위를 경험하게 되는데, 예로부터 "염소뿔도 녹는다"라는 속담이 전해질 정도로 강렬한 더위가 이어집니다. 이 무렵을 토용(土用)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오행설에서 유래한 것으로, 토기(土氣)가 왕성해지는 절기를 의미합니다. 사계절의 변화와 함께 토왕용사는 각 계절의 변화에 따라 흙의 기운이 강해지는 시기로, 특히 여름에는 혹서를, 겨울에는 혹한을 상징합니다.
옛 중국에서는 대서 기간을 5일씩 나누어 초후, 차후, 말후로 구분했습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초 후에는 반딧불이가 나타나고, 차후에는 흙에 습기가 많아지며, 말 후에는 때때로 큰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는 여름 장마가 끝나고 더위가 심해지며, 사람들은 삼복더위를 피해 계곡이나 산정에서 술과 음식을 나누며 더위를 피하는 풍습을 즐기곤 했습니다.
농촌에서는 대서 무렵이 되면 농작물 관리에 바쁜 시기입니다. 논밭의 김매기와 잡초 베기, 퇴비 마련 등으로 하루하루가 바쁘게 흘러가며, 이때 수확한 참외, 수박, 채소 등의 과일과 채소들이 풍성하게 먹을 수 있는 시기입니다. 비가 많이 내리면 과일의 당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가뭄이 들면 과일이 더욱 달아집니다.
여름 절기인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옛날 이야기와 풍습이 어우러져 농사와 일상의 중요한 지침이 되었습니다. 까마귀가 복을 가져다주고, 태양신이 힘을 북돋아주는 이야기들은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던 사람들의 지혜와 상상력이 담긴 전설들이죠. 여름 절기를 통해 조상들의 삶을 돌아보며, 자연의 흐름을 함께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참고자료>
한국속담·성어 백과사전1 -속담 편 (박영원 외 편저, 푸른 사상사, 2002)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 (국립민속박물관, 2003) 한국민속 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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