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가을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선선한 바람, 노랗게 물든 단풍, 그리고 풍성한 수확의 계절! 사실 가을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풍요로운 계절이지만, 우리의 전통 속에서는 ‘24 절기’라는 특별한 시간표로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가을을 여는 첫걸음인 '입추'부터 시작해 '상강'까지, 총 6개의 가을 절기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이 절기들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흥미로운 이야기까지 한 번 들어보실래요?
입추 (立秋) – 양력 8월 7일경
입추는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입니다.
한자 '입(立)'은 서다, 시작하다를 의미하고, '추(秋)'는 가을을 뜻하죠.
비록 이 시기에는 한여름의 더위가 남아있지만, 입추가 지나면 밤바람이 살짝 선선해지면서 가을이 가까워졌음을 느낄 수 있어요. 입추는 벼가 무르익어가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맑은 날씨가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입추 이후로 비가 닷새 이상 내리면 조정이나 각 고을에서 비를 그치게 해달라는 기청제를 지내곤 했다고 해요. 이때의 날씨는 곡식의 수확을 예측하는 중요한 지표였습니다. 입추에 하늘이 맑으면 곡식이 풍년이 될 것이라고 믿었고, 비가 조금 내리면 좋은 징조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많은 비가 내리면 벼가 상하고, 천둥이 치면 수확량이 줄어들 것이라고 여겼죠.
입추 이후에는 낮에는 덥더라도 밤바람이 서늘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농촌에서는 가을을 준비하는 시기로 삼았어요. 이때 김장용 무와 배추를 심어 겨울철 김장을 대비했고, 김매기 등의 농사일도 거의 끝나가면서 농촌은 비교적 한가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말이 전해졌죠. 이것은 7월부터 8월에 이르는 시기가 상대적으로 여유롭다는 것을 의미하며, 봄철의 바쁜 농사철과 대비되는 표현이에요.
처서 (處暑) – 양력 8월 23일경
'처서'는 더위가 물러간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한자로 '처(處)'는 물러가다, '서(暑)'는 더위를 의미하죠.
이때가 되면 뜨거운 여름이 어느 정도 끝나고,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기운이 돌기 시작해요.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그만큼 더위가 한풀 꺾이고 모기 활동이 줄어든다는 뜻이에요. 특히 처서가 지나면 수확을 앞둔 농부들이 한층 더 분주해지죠.
처서는 이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변화를 느끼게 하는 시기로, ‘땅에서는 귀뚜라미가 울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이 떠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을의 기운이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고려사』에서는 처서를 5일씩 세 번 나눠 설명하는데, 첫 번째 5일에는 매가 새를 잡아 제를 지내고, 둘째 5일에는 가을 기운이 천지에 돌며, 셋째 5일에는 곡식이 무르익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처서가 지나면 햇볕이 강해도 그 기운이 한층 누그러지기 때문에, 논두렁의 풀을 깎거나 산소를 벌초하기에 적합한 시기입니다. 또한, 장마로 젖었던 옷이나 책을 말리는 일도 이때 이루어졌습니다. 이 시기는 비교적 한가한 농사철로, 음력 7월 15일 백중의 호미씻이도 끝나죠.
하지만 처서의 날씨는 농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특히 이 시기의 햇볕은 벼 이삭이 잘 여무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에, 처서에 비가 내리면 곡식이 흉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습니다. “처서비에 십리에 천석이 줄어든다”는 말처럼 처서에 비가 오면 그동안 잘 자라던 곡식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해 손실을 입는다는 믿음이 있었죠. 이는 처서비를 꺼리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전국적으로 처서에 비가 오는 것을 불길하게 여겼습니다.
백로 (白露) – 양력 9월 8일경
백로는 ‘하얀 이슬’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한자 '백(白)'은 하얗다는 뜻이고, '로(露)'는 이슬을 의미하죠.
이 시기에는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내려가면서 풀잎 위에 맺힌 이슬이 하얗게 보일 정도로 차가워진답니다. 백로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가을 날씨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옛사람들은 백로를 "가을의 시인"이라 불렀다고도 하죠.
백로는 ‘흰 이슬’이라는 뜻으로, 밤 기온이 내려가면서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히는 시기를 의미해요. 이때부터 가을 기운이 본격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하죠. 옛날 중국에서는 백로부터 추분까지를 5일씩 세 부분으로 나누었는데, 첫 번째 5일에는 기러기가 날아오고, 중간 5일에는 제비가 남쪽으로 돌아가며, 마지막 5일에는 새들이 겨울을 대비해 먹이를 모은다고 했어요.
백로 즈음엔 장마가 끝나고 맑은 날씨가 계속되지만, 가끔 태풍이나 해일 때문에 농작물에 피해를 입기도 해요. 특히 벼농사에 중요한 시기인데, 벼는 백로 전에 이삭이 패야 하고, 서리가 내리면 수확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백로 이전에 여물어야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죠. 제주도에서는 "백로 전에 벼가 이삭을 못 패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속담도 있어요. 충남이나 경남 지역에서도 비슷하게, 백로 전에 이삭이 패야 그 벼가 잘 여물고, 그렇지 않으면 쭉정이가 될 수 있다고 여겼어요.
이 시기에는 바람도 중요한 역할을 해요. 농부들은 백로 무렵에 바람이 불면 벼가 잘 여물지 않거나, 여물어도 검게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때 바람을 예의주시하며 그해 수확을 점쳤어요.
백로는 대개 음력 8월 초순에 오지만, 가끔 7월 말에도 들 수 있어요. 이때 백로가 빨리 오면 참외나 오이 같은 작물이 잘 자라고, 8월 백로에 비가 내리면 풍년이 될 징조로 여겼어요. 경남 섬 지역에서는 “8월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 천석이 늘어난다”는 말이 전해져 오고, 백로 무렵에 비가 내리는 것을 좋은 징조로 여겼답니다.
또한, 백로는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하는 시기이기도 해요. 여름 농사를 마무리한 농부들은 잠시 손을 놓고 쉬며, 부녀자들은 친척집을 방문하기도 했어요. 백로는 가을의 시작을 알리며, 추수를 앞두고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기인 셈이죠.
추분 (秋分) – 양력 9월 23일경
추분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시기예요.
한자로 ‘추(秋)’는 가을, ‘분(分)’은 나눈다는 뜻이죠.
추분 이후로는 밤이 점점 길어지며, 가을이 더 깊어지기 시작합니다. "추분 지나면 밤이 이불 밖으로 나간다"라는 말이 있어요. 이처럼 추분부터는 밤기온이 더 차가워지기 때문에 따뜻하게 입고 자야 한다는 뜻이에요.
추분은 태양이 적도를 가로지르는 시점으로, 태양이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넘어가는 때를 말해요. 이때는 적도와 교차하면서 태양의 위치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해, 낮과 밤의 길이가 거의 같아지죠. 그래서 추분을 계절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생각하게 돼요. 추분이 지나면 밤이 점차 길어지기 시작하고, 가을의 깊이가 더해짐을 느끼게 되죠. 비슷한 시기인 춘분과 비교하면, 추분 때의 기온이 더 높은데, 이는 여름의 잔열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에요.
추분 무렵에는 벼락이 그치고, 벌레들이 땅속으로 숨어들며, 물도 점점 말라가기 시작해요. 이때는 태풍이 자주 발생하는 시기이기도 해서 농작물 관리에 신경 써야 해요. 추분을 전후로 농촌에서는 가을걷이가 한창인데, 논밭의 곡식을 수확하고, 목화를 따고, 고추나 호박고지 등을 말리기도 하죠. 고구마순과 깻잎, 산채 등을 말려 겨울 먹거리를 준비하는 것도 이때 이뤄져요.
또한, 고려시대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추분에 장수와 건강을 기원하는 ‘노인성제’라는 의식을 지냈어요. 이 의식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이어져, 국가적인 행사로 소사(小祀)로 지정되었답니다.
추분 날씨를 보고 다음 해의 농사를 점치는 풍속도 있어요. 이때 건조한 바람이 불면 다음 해에는 대풍이 들 것이라고 믿었어요. 또한, 추분이 사일(社日) 전에 있으면 쌀이 귀하고, 뒤에 있으면 풍년이 될 것이라고 여겼죠. 바람이 어느 방향에서 부느냐에 따라 겨울의 날씨도 예측했는데, 감방에서 불어오면 겨울이 아주 추울 것이라고 했어요. 이날 작은 비가 내리면 좋은 징조로, 맑게 개면 오히려 흉년이 될 것이라고 믿었죠.
한로 (寒露) – 양력 10월 8일경
한로는 차가운 이슬이 맺힌다는 뜻이에요.
한자로 '한(寒)'은 차갑다는 뜻이고, '로(露)'는 이슬이죠.
이때부터는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자연은 더욱 빠르게 가을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한로가 되면 제비도 남쪽으로 간다"라는 속담처럼, 철새들이 남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해요.
한로(寒露)는 양력 10월 8~9일경에 해당하는 절기로, 이 시기에는 공기가 점점 차가워져 이슬이 찬 기운을 만나 서리로 변하기 직전의 시기예요. 음력으로는 9월에 해당하며, 태양이 황경 195도에 위치할 때가 한로에 해당합니다. 기온이 서늘해지면서 가을이 본격적으로 깊어지는 때죠.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한로는 9월의 절기로 기러기가 날아와 머물고, 참새가 큰 물에 들어가 조개가 된다고 했어요. 또한 국화꽃이 노랗게 핀다는 묘사가 있어요. 이 기록은 중국의 전통적인 기록과도 비슷한데, 이를 통해 한로가 계절적으로 중요한 변화를 나타내는 시기임을 알 수 있죠.
한로가 되면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기온이 떨어지기 전에 농촌에서는 바쁜 수확철이 시작됩니다. 오곡백과를 추수하고 타작을 하느라 농촌이 한창 분주해지는 시기예요. 이때는 단풍이 짙어지며, 여름새와 겨울새가 교체되는 모습도 볼 수 있어요. 제비는 떠나고, 기러기 같은 겨울새가 찾아오죠.
한로는 종종 중양절과 같은 시기에 맞물리는데, 중양절 풍속으로는 수유 열매를 머리에 꽂고 높은 곳에 올라가 고향을 바라보는 풍습이 있어요. 수유 열매는 붉은 자줏빛을 띠는데, 붉은색이 양의 기운을 상징하며 잡귀를 쫓는 힘이 있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수유를 머리에 꽂으면 나쁜 기운을 막을 수 있다고 했죠.
또한, 한로와 상강 무렵에 서민들은 시식으로 추어탕을 즐겼습니다. 『본초강목』에 따르면 미꾸라지는 양기를 돋우는 데 좋은 음식으로, 가을철 살이 오른 미꾸라지를 사용해 만든 추어탕이 몸에 좋다고 여겨졌어요. 그래서 이 시기에 추어탕을 즐기며 가을의 정취를 느끼곤 했답니다.
상강 (霜降) – 양력 10월 23일경
상강은 ‘서리가 내린다’는 의미예요.
한자로 '상(霜)'은 서리, '강(降)'은 내린다는 뜻이죠.
상강이 오면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본격적으로 겨울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됩니다. "상강이 오면 고추도 얼어 죽는다"는 속담은 그만큼 상강 때부터는 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상강은 한로와 입동 사이에 있는 절기로, 태양의 황경이 210도에 이르는 양력 10월 23일경에 해당해요. 이 시기에는 가을의 맑고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지만, 밤 기온이 크게 떨어져 서리가 내리고, 기온이 더 내려가면 첫얼음이 얼기도 해요.
상강 무렵에는 단풍이 절정에 이르고, 국화가 만개하는 늦가을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집니다. 조선시대에는 상강을 맞아 둑제라는 국가 의례를 치렀으며, 농부들은 이 시기에 추수를 마무리하고 겨울 준비를 시작했어요. 『초간선생문집』에는 상강의 풍경이 잘 묘사되어 있는데, 이 시기의 서리는 천지를 깨끗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기러기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가을의 끝을 알리는 모습이 담겨 있어요.
중국에서는 상강부터 입동까지를 5일씩 나누어 자연 현상을 설명했어요. 첫 번째 5일에는 승냥이가 산짐승을 잡고, 두 번째 5일에는 나무 잎이 노랗게 떨어지며, 마지막 5일에는 겨울잠을 자는 벌레들이 땅속으로 들어가는 때라고 했죠.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중국의 기록을 받아들여 농사와 계절 변화를 설명하는 데 사용했음을 알 수 있어요.
이렇게 입추부터 상강까지 6개의 가을 절기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각 절기마다 날씨의 변화를 예고하고, 사람들은 이를 기준으로 농사일을 계획했어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절기는 단순한 시간 구분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생활 방식이 담긴 중요한 기준이었답니다. 오늘 배운 절기와 속담들을 생각하며, 다가오는 가을을 더 깊이 느껴보세요!
가을은 어느새 우리 곁에 와 있답니다. :)
<참고자료>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삼국·고려시대 편 (국립민속박물관, 2003)
조선대세시기Ⅰ (국립민속박물관, 2003)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조선전기 문집 편 (국립민속박물관, 2004)
한국민속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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